ARCHIVES PRODUCER SCHOOL · ESSAY 10
진정한 헤리티지를 위한 일련의 과정
지금 진행하는 작업이 흩어지지 않고
아카이빙될 수 있는 방안을 찾겠습니다.
2019년, 작업실 지원을 받으며 했던 다짐이다. 내 입으로 ‘아카이빙’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시각예술인이다. 작업을 거듭할수록 나의 시선은 백지 위에서 세상으로, 붓질에서 관찰로 옮겨갔다. 마음 한편에는 우리가 마주하는 아이러니한 시간의 풍경을 유쾌하게 담아내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바라봄의 대상이던 산을 상업 공간의 뒤주 속에 작게 배치해 허리를 숙여야만 볼 수 있게 했다. 호텔에서 침대 시트로 쓰이다 버려진 천으로 산을 만들고, 군사시설이었던 문화비축기지의 탱크 안에 뒤집어 설치하기도 했다. 거꾸로 선 봉우리와 바닥에 누운 관객이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 서로 단절된 시간의 층위를 경험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아카이빙은 아무리 애를 써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일쑤였다.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관찰하고 표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시간과 인간의 개입이 축적되고 기록되는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했다. 과정은 걷잡을 수 없이 광범위해졌고, 결과물은 오히려 사라지거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단 한 번도 작가로서의 작업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주변에서는 내 행위의 경계가 모호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작가로서의 작업을 서둘러 잘 기록하고, 그것으로 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막막했다.
도대체 아키비스트들은 어떤 생각과 구조로, 무슨 이유에서 기록하는지 궁금해졌다. 이후 아카이빙에 관한 책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엮으며 처음으로 아키비스트의 시선을 담아보기도 했다. 그 뒤에도 아카이빙과 관련된 활동, 예술 기록의 평가와 지원, 심사 등에 꾸준히 참여했지만 아카이빙은 여전히 내게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였다.
그러던 중 한국아카이브재단이 기획한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 APS 교육 과정을 알게 되었다. 황금 같은 금요일 오후를 반납해야 했고 매주 과제가 주어졌다. 강의 편성안에는 평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이 교육에 참여한 이유는 과정을 기획하고 이끄는 사람들이 아카이빙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며 알려온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각을 곁에서 읽고 직접 겪는 일이 활자로만 학습하는 것보다 훨씬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 믿었다.
APS에서 만난 동료들 가운데에는 기록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도, 이미 아키비스트로 활동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도 강연자와 재단 사람들, 수강 동료들과 함께 강의 내용에 여러 수다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의 방향을 고민하는 수강생들, 굳이 시간을 내어 자리에 남은 재단 사람들, 세 시간 강연으로 기운이 빠졌을 텐데도 한마디라도 더 알려주려는 강연자가 둘러앉아 만든 시간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각자 한 발씩만 더 개인의 손익을 계산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순간이 매 회차 이어졌다. 그래서 강의 뒤에 만들어진 이 번외편이 때로는 정규 강의보다 마음에 더 와닿기도 했다.
매주 주어지는 과제는 쉽지 않았다. 워크북 창을 열었다가 부담감에 그대로 닫고, 다음 날 다시 열었다가 딴청을 피우며 겨우 한 글자씩 채워 넣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런 지루하고 단순한 기록의 과정 자체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랐으니, 그동안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 번은 쉬는 시간에 홍성덕 교수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커뮤니티 작업을 하며 모은 귀한 자료가 많지만, 함께한 기관들은 굳이 가지려 하지 않고 나는 정리하지 못해 활용도 못한 채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모두 껴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이관하고 싶다면 표로 정리하고 기준에 맞춰 목록화해야,
기관에서도 받을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질문의 이면에는 ‘나 혼자 감당하기 버거우니 공공에서 가져가 잘 활용해주었으면 좋겠다’는 회피의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그 마음을 산산조각 냈다.
그제야 그동안 고민이 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카이빙을 나의 안위를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작업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나의 기록이 얼마나 특별한지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아 그 혜택을 누릴 궁리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록의 기본은 철저히 나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임종철 이사의 강의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깊이 와닿은 정의가 있다. 아카이브는 가치가 있어 장기 보존하는 기록, 또는 그 기록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장소나 조직을 뜻한다. 아카이빙은 기록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행위이자, 이를 기억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전망을 이끌어내기 위한 실천적 활동이다.
씨앗이 되는 기록이 인고의 시간을 거쳐 싹을 틔우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꾸러미가 되어 아카이브를 형성해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그런데 나는 그 기나긴 축적의 과정은 건너뛴 채 아카이빙의 마지막 정수인 열매만 단번에 베어 물겠다는 과욕을 부리고 있었다.
매주 나의 아카이빙 주제는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제자리에 머물기도 했다. 그래도 묵묵히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상상을 펼치며 작지만 의미 있는 기록을 이어갔다. 9주 차에 이르러서는 “앞으로 이런 기록을 해나가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쳐야 했기에, 부랴부랴 나름의 아카이브 꾸러미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제는 결과물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료를 모으고, 한 글자씩 적고, 기준을 만들고, 다시 정리하며 축적한 이 일련의 과정이 훗날 내 예술 작업의 진정한 헤리티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타성에 젖어들던 시기에 만난 APS는 참 고마운 과정이었다. 기록의 열매를 서둘러 얻으려 했던 나에게, 씨앗을 돌보고 시간을 견디는 법을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며 끝까지 책임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