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PRODUCER SCHOOL · ESSAY 01
기록, 기억이 돌아오는 자리
기록학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과 기록의 힘은 믿고 있습니다.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 첫 시간, 나의 자기소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기록 전공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참여를 결정하는 데 작지 않은 걸림돌이었다. 그럼에도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은 매력적인 커리큘럼과 누군가의 강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기억과 기록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의 나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기록의 힘에 강하게 끌렸던 사람이기도 했다.
눈빛이 총총한 기록 전공자들 사이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내야 했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도 제1기 수강생으로서 내 몫은 해내야 했기에 비전공자가 낼 법한 아이디어를 꿋꿋하게 내밀었다. 재단의 <어디-에서> 제안서를 보고 떠올린 ‘아카이빙 과정을 아카이빙하는 시스템’이었다. 기록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기록물의 이용과 수익 실현까지 전 과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곳, 기록의 가치를 함께 만들 공동체를 위한 일종의 베이스캠프를 상상했다.
그러나 이 막연한 아이디어는 첫날 김홍탁 마스터가 던진 ‘문제의 발견과 통찰, 가치의 실현’이라는 화두 앞에서 와장창 흔들렸다. 도구나 시스템을 생각하기 전에 중요한 가치와 목표를 먼저 세워야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은 세상에 가닿지 못해 결과적으로 들리지 않게 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연결하는 사운드 아카이빙 시스템이었다.
인간의 목소리는 지문처럼 한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는다. 개인의 정체성을 전하는 매개이자 세상에 남기는 고유한 흔적이다. 내밀한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는 순간 개인의 감정은 의미를 얻고,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험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그렇게 기록된 목소리들이 단절과 고립, 소외를 넘어 공감과 연대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이르자 구체적인 얼굴들이 떠올랐다. 반려동물이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처럼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내고 힘겨운 애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현대사회의 단절과 공감의 부족, 사회적 지지의 부재 속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이야말로 쉽게 말할 수 없는 내밀한 감정을 꺼내는 일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대상이 선명해지자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운드 아카이빙만으로는 여전히 막연하고 미약해 보였다. 그때 떠오른 것이 아로마테라피였다. 강의 뒤풀이에서 내가 아로마 조향사이며 천연 향수 브랜드를 소박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을 때 여러 사람이 보여준 관심과 지지가 생각을 한 걸음 더 밀어주었다. 자유롭고 포용적인 스쿨의 분위기 속에서 사운드 아카이빙과 아로마테라피를 결합하는 아이디어가 자라났다.
그렇게 청각과 후각을 통해 상실의 고통을 돌보는 기획이 만들어졌다. AI 기술로 떠난 사람을 재현하는 추모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는 시대다. 그러나 그러한 재현은 지속적인 정신적 스트레스와 윤리적·법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애도의 심리적 종결을 방해할 수 있다. 내가 제안한 것은 AI로 존재를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신의 청각과 후각을 통해 슬픔을 일상의 평온한 기억으로 안착시키는, 윤리적이고 안전한 애도의 방식이었다.
데모데이 발표 자료를 마무리할 무렵, 기호학자이자 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이어진 애도의 시간을 카드에 기록했고, 그 기록은 훗날 『애도일기』로 묶였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그 문장은 애도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다루어야 할 문제임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애도의 방식을 답습하기보다 각자의 신체적 감각을 통해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었다. 문득 돌아보니 나의 석사논문을 관통했던 주제와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 제안이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의 취지에 꼭 들어맞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번 스쿨을 통해 나는 분명 하나의 기록을 얻었다. 2026년 무더위 속으로 흘러간 시간에 가치와 지향을 품은 디테일이 생겼다. 귀한 강의를 들려준 선생님들, 이 시간을 열어준 재단의 모든 분들, 함께 열심히 참여한 동기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사진을 공부했던 나는 디테일의 힘을 믿는다. 성긴 그물과 코드화된 체계로는 닿을 수 없는 진실이 디테일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뒤풀이 자리에서 이연창 이사장이 “더 많은 기록이 남겨짐으로써 세상은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아키비스트란 참으로 낭만적인 사람들이구나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소설가 황정은은 우리가 모두 잠재적 화석이라고 쓴다. 그렇다면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그 화석의 가치를 높이는 일일 것이다. 더 나아가 동시대에 그 가치를 미리 발견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앞당겨오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정말 근사한 일이 아닌가. 기록학을 모르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소 낭만적으로.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 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 황정은, 『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