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APS1 후기_'WHY'와 'SOLUTION'의 사이, 아카이브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
작성자 김서연 게시일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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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프로듀서스쿨 · #제1기후기

ARCHIVES PRODUCER SCHOOL · ESSAY 04

‘WHY’와 ‘SOLUTION’의 사이, 아카이브


왜 시작하는가를 묻고, 기록을 통해 해법에 다가가는 일.

처음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에 지원했을 때는 사실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저 아카이브라는 주제를 사업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고, 그 질문을 따라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과정에 지원하려면 아이디어가 필요했기에 내가 나름대로 경험해본 주제를 꺼냈다. 그렇게 처음 가져간 아이디어는 ‘지역 노포 히스토리 브랜딩’이었다.

그 아이디어는 김홍탁 마스터의 첫 수업을 들은 직후 바뀌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왜’ 하려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뚜렷한 답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보다 왜 만들려는지가 먼저라는 사실 앞에서, 비로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아카이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끝에 새롭게 설정한 주제는 ‘직업적 고민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선배들의 이야기’였다. 일을 하며 방향을 잃거나 새로운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비슷한 길을 지나온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해 전하고 싶었다. 한 사람의 선택과 실패, 망설임과 전환의 과정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길을 찾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주제를 품고 수업을 들으면서는 줄곧 ‘사업화’를 고민했다. 분명 필요한 일인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어떻게 닿게 할 것인지,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했다. 조직에 속해 명확히 주어진 일을 해온 나에게는 낯선 질문들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근육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웠고, 솔직히 중간중간 회피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물이 길잡이이자 일종의 도망 방지 장치가 되어주었다. 과정의 거의 후반까지도 아카이브 구축 방법만 구체화했다. 기록을 누구에게서 어떻게 수집하고 어떤 형태로 보여줄 것인지는 조금씩 선명해졌지만, 그것이 어떻게 이용자의 행동과 지속 가능한 구조로 이어질지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데모데이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야 비로소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멘토링 서비스였다. 직업적 전환을 이룬 사람들이 멘토가 되어 직업적 고민을 겪는 사람들에게 경험을 나누고 멘토링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용자의 입장에서부터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는 팁스타그램 염호근 대표의 강의가 중요한 힌트가 됐다. 기록을 먼저 쌓아놓고 이용자를 찾는 대신, 이용자에게 필요한 경험에서 출발해 어떤 기록과 연결이 필요한지를 되짚어보게 된 것이다.

아카이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WHY’와 ‘SOLUTION’ 사이에서 가치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수업을 통해 사업화를 고민했다면,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보면서는 ‘진심’이라는 말을 자꾸 꺼내보게 됐다. 자신이 하는 일과 관심 분야에 깊이 몰두하고, 그것을 아카이브와 결합해 무언가를 만들어보려는 순수한 열망이 느껴졌다. 잘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한 분야를 사랑하는 일은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그런 동료들이 부러웠다. 동시에 나도 나만의 세계를 잘 구축해가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 됐다. 아카이브 기획은 기록을 다루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무엇을 오래 바라보고 있는지, 왜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지, 끝까지 붙들게 하는 마음이 무엇인지가 기획의 방향을 만들었다.

마지막 데모데이 총평에서 김홍탁 마스터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모든 일과 사업에는 ‘WHY’와 ‘SOLUTION’이 있고, 이번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의 미션은 그 사이에 아카이브가 있도록 만드는 일이었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사실 아카이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모으는 데에서 멈춘다면 수집가로 남지만, 그 기록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가치를 부여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연결할 때 프로듀서의 일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 기획으로 도달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고, 그 거리를 확인한 것 역시 이번 과정에서 얻은 배움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의 의미가 드러났다. 아카이브 사업 경험을 가진 재단이 아이디어의 실현을 돕고, 혼자서는 지나치기 쉬운 질문을 함께 고민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당장 지금의 아이디어를 실행 단계로 가져가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업 기획을 직접 해본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회사의 소속이 아닌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고민해본 일은 귀한 경험이었다.

이 고민은 내가 공부하고 있는 기록관리학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기록관리는 여전히 공공영역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 수치로 환산되는 효용을 찾기 어렵다고 여기고, 작은 조직은 인력과 예산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필요성을 알리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주체’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는 현상은 반가운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록관리를 공부했거나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카이브가 무엇인지 학술적·기술적으로 경계 짓는 데 머물기보다 그 울타리를 넓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카이브는 특별한 사람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APS 제1기 졸업생으로서, 그리고 기록관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궁극적으로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아카이브가 필요한 자리와 사람을 발견하고, 기록이 질문에서 해법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 아카이브의 외연을 넓히는 사람 말이다.

질문과 해법 사이에 기록을 놓고, 더 많은 사람이 아카이브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김이화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 제1기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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