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PRODUCER SCHOOL · ESSAY 05
아카이브의 활용, 누구를 위함인가?
내가 궁금한 기록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기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에 지원한 이유는 단순했다. 기록을 가지고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과정이 궁금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기록학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주제를 찾던 중에는 대학로의 오래된 극장과 공연에 관심이 갔다.
소극장 하나하나의 역사와 현재 상연 중인 공연에 관한 정보는 포스터와 기사, SNS 등에 흩어져 있었다. 관련 자료를 한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는 형태는 많지 않았다. 대학로 공연센터나 아르코예술기록원에서도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공연이 올라간 극장은 어떤 곳인지, 그 공간에는 어떤 이야기가 쌓여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기록해보기로 했다.
나의 작업은 대학로 소극장의 아카이브를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지금의 관객이 조금 더 쉽게 바라볼 수 있는 형태로 다시 엮어보자는 데서 시작했다. 공연의 정보와 극장의 역사를 연결하면, 한 작품을 보는 경험이 무대 위의 이야기에서 공간과 시간의 이야기로 넓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데모데이 발표 사례로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와 ‘지인시어터’의 전신인 ‘알과핵소극장’을 조사했다. 들여다볼수록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나타났다. 1999년 IMF 불황 속에서 문을 연 알과핵소극장이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다가 2023년 지인시어터로 이름을 바꿨다는 것, 하나의 공연이 18년째 오픈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조사해야 할 이야기의 두께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두터웠다.
자료를 찾고 서로 연결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한 편의 공연과 하나의 극장을 따라가다 보니 작품의 시간과 장소의 시간이 포개졌다. 흩어져 있던 정보가 하나의 맥락을 얻는 순간마다, 기록을 활용해 콘텐츠를 만든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데모데이를 준비하면서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도 보였다. 수용자의 입장을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공연 정보가 딱딱하다’는 문제의식과 ‘관객이 극장의 역사까지 궁금해할 것’이라는 판단은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둘을 충분히 구분하지 않은 채 하나의 기획으로 묶어 진행하고 있었다.
정보를 친절하게 보여주는 일과 내가 흥미롭게 느낀 이야기를 콘텐츠에 담는 일은 따로 나누어 살펴봤어야 했다. 내가 조사하며 재미있었던 것이 관객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흥미로운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정작 이 콘텐츠가 누구에게 필요한지,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지를 깊이 묻지 못했던 것이다.
누구를 위해 만드는지 먼저 묻는 일입니다.
수익화와 사업화의 경로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받았다. 처음부터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었던 만큼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봤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수록 이것을 실제 사업으로 가져갈 수 있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공공성이 높은 소재라는 사실과 누군가가 실제로 비용을 내고 이용할 서비스라는 사실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의미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수요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사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없었다. 결국 이 프로젝트를 계속 사업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그 결론이 이번 작업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보았기 때문에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주제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라는 처음의 전제를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내가 궁금한 것과 다른 사람이 궁금한 것은 생각보다 다를 수 있었다.
결국 아카이브의 활용에서는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하는 일만큼이나 누구를 위해 만드는지 먼저 생각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용자를 상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확인하며, 기록을 어떻게 보여줄지와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를 구분해 설계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이번 과정을 통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어봤다.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고 자료를 찾았으며, 조사한 내용을 연결하고 고민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에서 대학로 연극과 소극장을 들여다본 시간은 여기까지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질문과 배움은 너무도 값진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