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PRODUCER SCHOOL · ESSAY 09
사라져가는 것들의 기록과 기록의 지속성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기록이 다음 경험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조수윤,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 제1기생이다. 두 달간의 과정이 끝난 뒤 기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내가 어떤 계획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돌아보려 한다.
처음 스쿨에 참여했을 때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문화유산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 주 한 주 수업이 쌓이면서 그 생각은 어느새 ‘문화유산로 프로젝트’라는 큰 계획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따라 걸으며 의미를 이해하고, 지역의 역사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체험형 프로젝트였다.
기획을 구체화하면서 방법론과 핵심 이해관계자, 위험 요소, 굿즈, 단기·중기·장기 계획을 하나씩 따져보았다. 흩어져 있던 생각을 한데 모으자 문화유산로 프로젝트의 초안이 만들어졌고, 마침내 데모데이 기획안으로 공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화유산로 프로젝트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을까. 나는 문화유산의 의미가 점차 묻혀가고 있다고 느꼈다. 역사는 시간이 흐르며 새롭게 해석되지만, 때로는 그 과정에서 사실의 의미가 달라지거나 극단적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미 완성된 타인의 경험을 요구하기보다 우선 나 자신의 경험을 꺼내 보이기로 했다. 작성자의 경험이 먼저 공개되면, 그것을 본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자신의 경험도 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각자의 경험을 다시 기록으로 잇는 길.
문화유산로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문화유산을 따라 걸으며 장소를 체험하고 주변 지역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참여자는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굿즈도 함께 사용한다. 모두 다섯 종류를 구상했지만 데모데이에서는 글자 레터링 키링, 글자 포토카드, 문화유산 퍼즐까지 세 가지만 공개했다. 각 굿즈에는 QR을 넣어 관련 정보를 볼 수 있는 웹사이트로 이어지도록 계획했다.
그중 글자 레터링 키링은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은 물건이다. 키링을 문화유산로 프로젝트 전용 판에 꽂으면 여러 글자가 맞춰지며 하나의 단어가 완성된다. 키링의 QR을 통해서는 그 글자와 문화유산에 얽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발상은 프로젝트를 주관한 기관의 연구원이 참고용으로 건네준 아이디어에서 발전한 것이다. 좋은 실마리를 준 연구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프로젝트에는 해결해야 할 위험 요소도 있다. 첫 번째는 문화유산을 해석할 때 생길 수 있는 주관성의 문제다. 가능한 한 확인된 사실에 근거해 정보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보완하고자 했다. 두 번째는 저작권과 이용 허가의 문제다. 문화유산마다 관리 주체가 달라 일괄적으로 허가받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실행한다면 각 관리 주체와 충분히 협의하고, 관련 기관과 협력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실행 계획도 단계별로 나누었다. 단기에는 첫 번째 문화유산로와 QR 시스템, 굿즈를 준비한다. 중기에는 문화유산로를 실제로 운영하면서 굿즈를 제작하고 필요한 인프라를 설치·관리한다. 장기에는 문화유산로의 범위를 넓히고 함께하는 관계자를 늘리며 굿즈의 종류도 확장한다. 작은 길 하나에서 시작해 기록과 참여의 기반을 차근차근 넓혀가는 구상이다.
여기까지가 문화유산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제는 과정 속에서 내가 겪은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스쿨에서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힘껏 쥐어짜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내게 더 큰 과제는 여러 차례 이어진 발표였다.
긴장을 많이 하는 탓에 두 번의 발표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마지막 데모데이에 이르렀을 때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가자.” 계획한 내용을 많은 사람 앞에서 끝까지 설명하고 질의응답도 모두 마쳤다. 발표를 마치고 나니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훨씬 컸다.
그 경험을 통해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은 글만 잘 쓴다고 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기획의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말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도 필요했다. 발표 기술은 프로젝트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요긴하게 쓰일 힘이기에, 이 또한 과정에서 얻은 중요한 배움이었다.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문화유산로 프로젝트부터 제대로 다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고, 지금 당장 실행하기에는 부족하거나 걸리는 요소도 남아 있다. 계획이 충분히 구체화되고 실제로 실행되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준비하고 싶다.
동시에 내가 먼저 공개한 경험을 본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경험이 또 다른 사람의 기억을 불러내고, 그렇게 문화유산을 둘러싼 공감대가 넓어졌으면 한다. 문화유산로는 장소를 안내하는 길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경험이 기록으로 만나 계속 이어지는 길이어야 한다.
지금도 많은 것이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 기록하고 아카이브를 만든다. 그러나 기록하는 데서 멈추면 아카이브도 그 자리에 멈춘다. 기록을 사람과 경험으로 계속 이어갈 때, 비로소 아카이브는 멈추지 않고 다음 시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록을 계속 잇는다면, 아카이브는 다음 시간으로 나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