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APS1 아키비스트와 아카이브 프로듀서의 차이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
작성자 김서연 게시일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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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프로듀서스쿨 · #제1기후기

ARCHIVES PRODUCER SCHOOL · ESSAY 02

아키비스트와 아카이브 프로듀서의 차이


아카이브 프로듀서, 대체 이게 뭘까?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공공기록물 관리를 전공하고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나에게도 이 말은 유난히 낯설었다. 내가 배워온 기록관리는 공공기관 업무의 맥락을 유지하기 위해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며 보존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도 수많은 판단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기록관리’와 ‘프로듀싱’이라는 창조적인 단어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히려 함께 놓이기에 어색해 보이는 두 단어의 조합이 궁금해졌다. 강의 기획안에서 아카이브 프로듀서를 ‘기록을 발굴하고, 의미를 기획하여, 세상에 내보내는 기록 기반 크리에이터’라고 정의한 점도 흥미로웠다. 강의 구성 역시 알차 보였다. 그렇게 낯선 이름에 대한 호기심으로 스쿨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정의에 담긴 ‘의미’라는 말에 유독 매몰되었던 것 같다. 기왕 아카이브를 기획한다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공익적인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기들의 기획에서도 지역이나 사회문제와 연결된 주제를 많이 접하다 보니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나 역시 그에 걸맞은 무언가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처음 떠올린 주제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기록하는 아카이브였다. 사람들이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사회가 지쳐가는 이유 중 하나는 미래를 상상할 힘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한때 꿈꾸었던 미래의 모습을 모아 보여줌으로써 다시 미래를 상상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미래를 꿈꾸며 기대하던 우리들의 과거를 통해 다시 미래를 꿈꿀 에너지를 얻는 아카이브’를 만들고 싶었다.

아이디어 자체는 지금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의와 활동을 통해 기획을 구체화할수록 한 가지 벽에 부딪혔다.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주제가 곧 좋은 아카이브 기획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기록으로 수집할지, 누가 그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지, 일회성 수집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지속적으로 축적할지까지 생각해야 했다.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자 첫 번째 아이디어는 현실적으로 너무 막막해졌다. 결국 아쉽게도 기획을 포기했다. 희망을 얻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아이디어가 나의 희망을 가로막다니, 꽤 ‘웃픈’ 일이었다.

활동의 절반이 지나도록 주제를 정하지 못해 마음이 급해질 무렵, 강의에서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라”는 말을 들었다. 돌아보니 다른 동기들도 자신이 살아온 지역이나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던 대상처럼 삶과 가까운 곳에서 주제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이미 오래 좋아해온 것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뮤지컬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공연을 보았고 티켓을 계속 모아왔을 만큼 애착이 큰 취미였다. 오랫동안 관심을 유지해온 대상이기에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계속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기록하는 일이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아카이브가 될 수 있을까?

좋아하는 대상 안에서 나만의 질문을 발견하고,
흩어진 기록을 연결해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

그 질문을 따라가며 아카이브 프로듀서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아키비스트가 기록이 만들어진 맥락과 본래의 의미를 지키고 오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무게를 둔다면, 아카이브 프로듀서는 기록 사이의 관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관점과 질문을 더해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는 데 조금 더 무게를 둘 수 있다. 두 역할은 완전히 분리되기보다 서로 맞닿아 있지만, 이 차이를 생각하니 내가 무엇을 더 시도해야 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뮤지컬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그것을 아카이브 프로듀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내가 평소 뮤지컬을 보는 방식 안에 있었다. 나는 어떤 배우가 잘했는지, 줄거리가 재미있는지를 평가하기보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왜 ‘하필이면’ 이런 방식으로 표현했는지를 궁금해하는 편이었다. 같은 작품도 연출과 무대, 의상, 배우의 표현이 달라지면 메시지와 해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는 일이 흥미로웠다. 나처럼 작품 자체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획한 프로젝트가 데모데이에서 발표한 ‘REPRISE’였다. REPRISE의 핵심은 한 작품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온 방식과 해석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포스터와 캐스팅, 넘버, 의상과 무대 자료를 단순히 나열하는 대신 초연과 재연, 이후의 시즌 사이에서 무엇이 변했는지를 연결해 다양한 관점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했다.

기록 자료 자체는 그대로여도 어떤 기록을 선택하고, 무엇과 연결하며,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에 따라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의미가 나타날 수 있다. REPRISE를 기획하면서 비로소 ‘아카이브’와 ‘프로듀서’라는 두 단어가 내 안에서 조금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기록으로 의미를 만든다는 것은 반드시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를 덧씌우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 안에서 나만의 질문을 발견하고, 흩어져 있던 기록을 그 질문에 따라 연결해 다른 사람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그 역시 하나의 의미 생산이 될 수 있었다.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이 내게 남긴 가장 큰 변화도 이 지점에 있다. 처음에는 “어떤 기록이 사회적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고민했다면, 지금은 “나는 이 기록들에서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동시에 좋은 아카이브 기획에는 관심과 의미만큼이나 실제로 자료를 수집하고 지속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아직도 “아카이브 프로듀서는 뭘까?”라는 질문에 완벽한 답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이제는 그 질문에 나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기록을 지키는 일과 의미를 기획하는 일 사이에서,
나만의 질문이 아카이브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금효진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 제1기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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