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PRODUCER SCHOOL · ESSAY 08
마음을 공유하고 싶은 아카이브
언니들의 삶을 편견 없이 기록하고,
그들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까지 나누고 싶었습니다.
처음 안내 포스터를 보고 막달레나공동체 국장님에게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아카이브 업무에 투입된 지 약 2주가 지난 상태였다. 새싹이라면 새싹, 아직 새순조차 제대로 내지 않은 때였다. 아카이브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나만의 판단이 서지 않아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은 그런 나에게 찾아온 엄청난 기회였다.
바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해 회사에 급히 기획안을 냈다. 신청서를 제출한 뒤에는 마음이 괜히 붕 떴다. 무엇을 배우게 될까. 나에게 어떤 기준을 제시해줄까. 기대와 긴장이 함께 부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를 준비하던 중 한국아카이브재단에서 메일이 왔다. 참여자로 선정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국장님에게 달려가 사실을 털어놓았다. 국장님은 이 프로그램이 단체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좋은 기회라며, 참관이라도 가능한지 한 번 요청해보자고 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용기를 내 메일을 보냈다. 이 프로그램이 내게 얼마나 간절한지 호소했던 것 같다. 어차피 안 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한 번 두드려보고 안 되는 것과 여기서 그대로 수긍하는 것은 달랐다. 재단에서 내부 논의를 해보겠다는 답을 받은 뒤 단체 대화방에 초대된 것을 보고서야 안심했다.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그때 온전히 실감했다.
회사에서 숙대입구까지는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면 되는 단순한 이동이었지만, 나는 회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이상하리만큼 긴장했다. 버스 안에서 단 한 번도 잠든 적이 없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긴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첫 주 교육을 듣고 난 뒤에는 머리가 멍해졌다. 우리는 사기업이 아닌데 이 내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참여자 가운데 복지 분야에서 온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모두 큰 꿈과 포부를 안고 아카이브를 기대하며 나온 것에 비해 내가 가진 문제의식은 너무 형식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육이 이어진 5주 동안에는 내 안의 의문과 숙제를 해결하고 돌파하기에 급급했다. 매일 고민하며 생각을 정리했고, 덜어낼 것은 덜어내고 보완할 것은 채웠다. 전혀 모르는 영역이었지만 찾아와 공부하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나는 배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이번 교육을 통해 다시 알게 됐다.
과정이 마냥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특정 단체에 소속된 이상 결정권자들의 의견을 모두 외면하고 내 마음대로 풀어갈 수는 없었다. 우리가 가진 특수성은 어느 날에는 기획을 풀어갈 중요한 실마리가 됐지만, 다른 순간에는 나를 주춤하게 만드는 숙제가 됐다. 보고하고, 지적을 받고, 다시 고민하는 일을 거듭하다가 이대로는 결판이 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침내 말했다. “이건 제가 가서 진행하는 저만의 사업 기획이니 제가 알아서 해보겠습니다. 실현되든 그렇지 않든 제가 오롯이 감당해볼게요.” 다행히 우리 단체에는 흔히 말하는 ‘꼰대’가 없다. 모두 내 의견을 받아주었고, 그렇게 나는 비로소 나만의 아카이브를 기획할 수 있었다.
어느 뒤풀이 자리에서 김서연 선임이 내게 물었다. 정말 하고 싶은, 혼자서라도 하고 싶은 아카이브는 무엇이냐고. 나는 막달레나공동체의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 언니들의 삶이 지나온 과정을 온전히 안아주고 싶고, 그들이 지나온 시간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삶을 편견 없이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었다.
그 마음까지 기록에 담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마 그 마음 때문에 교육에 더 애정을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사업으로 기획하려 하니 문장은 한없이 딱딱해졌다. 다른 참여자들처럼 화려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도 어려웠다. 언니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 본질에 집중했고, 그만큼 기획이 단조로워 보였을 수도 있다.
언젠가 조금 더 도약할 수 있다면 언니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굿즈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혼자 상상했다. 하지만 당시 기획안에는 담지 않았다. 발표를 앞두고서는 차라리 그 생각까지 더 적극적으로 보여줄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데모데이에서 나는 열 명 중 아홉 번째로 발표했다. 앞선 발표를 들으며 뒤에서 계속 고민했다. 다른 기획은 더 멀리 확장되는 것 같은데, 나는 한 단체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이야기의 사회적 가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발표하는 날까지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그러다 기획안 마지막 부분에 적어둔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렇게 풀어내면 되겠구나. 발표가 시작되자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을 설명했다. 우리의 아카이빙은 단순히 특정 단체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막달레나공동체의 역사는 여성운동사의 한 축이며, 기록되지 않은 채 간직되어온 것들을 제대로 기록하는 시작점이라고.
그 설명이 설득력을 가졌던 것일까.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사실 그 자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알린 것만으로도 내가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발표에 미련은 없었다. 시상이 시작되자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3등 정도는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3등에 이어 2등에서도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불렸다. 나는 ‘아, 나는 아니구나.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으니 됐다’고 생각하며 힘껏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1등을 발표하는 순간에도 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대에 찬 눈으로 재단 사무총장을 바라보는데 그 입에서 “고은영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세상에나, 정말 나라고?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휘둥그레진 눈을 숨길 수 없었다. 내가 1등이라니. 물론 나 혼자라기보다 막달레나공동체가 지닌 가치가 1등을 한 것이지만, 그래도 교육을 듣고 기획을 밀고 온 사람은 나이니 나도 함께 1등을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대표님과 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주말에 연락드려 죄송해요! 그런데 저, 1등이래요!” 모두가 함께 축하하고 행복해했다. 수상의 기쁨도 소중했지만, 어디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단체의 고유한 가치가 이렇게 드러났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교육은 끝났지만 아카이브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내가 이 일에 품은 애정이 기록 안에 오롯이 담길 것이라고 기대한다. 사람들은 애정을 느낀다. 내가 아카이브 프로듀서 스쿨의 기획에서 실무자의 애정을 느꼈듯, 사람들도 내가 만드는 아카이브를 보며 그 마음을 느낄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염없이 써 내려가고 싶다. 시작점이 이곳이라서 참 좋고, 한국아카이브재단과 함께여서 더욱 좋다. 더운 여름에 시작된 시간이 선선한 바람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오히려 더 뜨거워지는 것 같다. 내 마음의 뜨거움, 어디에서든 볼 수 있게 한껏 뽐내봐야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도록.
